지금은 12살인 딸이 한창 한국말과 영어를 배워가던 네 살 즈음의 어느 날
"아빠 아빠! Joshua 틀어주세요"
"응? 죠슈아?"
7년의 음악다방 DJ경력을 모두 끌어올리고 내 CD모음을 하나하나 다 더듬어 보아도 얘가 알만한 조슈아라는 곡은 없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알아낸 조슈아의 정체는 조트리오의 눈물 내리는 날이었다.
"한번만 도와줘 잘라낸 그리움
가슴 안에서 조금씩 자라
입술을 적셔와
또 한 번 그때 그 날로 나를"
"입술을 적셔와"에서 적셔와가 영어로 익숙한 Joshua로 들렸던 것이다. 하~아
예전에 지금의 젊은이들은 모르는 개콘의 한 꼭지에서 유명해진 "오빠 만세"라는 노래가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콘체르토 2번을 차용한 Eric Carmen의 "All by Myself"
올 바이 마이 셀프가 한국인에게는 오빠 만세로 들리듯이
영어가 더 익숙한 내 딸은 적셔와가 조슈아로 들렸던 것이다.
"아빠 마다가스카 재밌어요!"
"응? 마다가스카? 그건 본지 한참 됐잖아"
"아니 노래하는 거요"
"흐~음...아!! 나는 가수다"
"네 그거요"
"나는 가수다"도 영어 마다가스카로 기억하는군...

많은 이민가정에서 흔히 말하는
"어른이 문제지 애들은 금방 배워"
"집에서도 영어로만 말해야 해"
모두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애들도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3살이 채 되지 않았던 나이에 이민 온 필자의 둘째는
한국말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데이케어에서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터라
전날 급히 "No!"와 "I need to pee" 두 문장만 가르켜 정글로 뛰어들었고
반면 6살의 나이에 캐나다로 온 큰애는
이미 한글은 읽고 쓰기가 거의 완벽했고
영어는 학교 입학 전 받은 테스트로는 간단한 생활단어 정도가 가능한 상태였다.
한 두해가 지나면서도 애들의 사회생활은 딱히 문제없어 보였지만
어느 날 큰애에게서 스트레스성 원형탈모를 발견하고 좀 더 깊은 대화로 원인을 찾다 보니
한국에선 수다스럽던 성격의 애가 영어로는 원하는 만큼 떠들질 못해 생긴 스트레스를 발견합니다.
물론 작은 애도 매일 아침 데이케어에서 떼를 쓰며 울었던 힘든시기를 겪게 되죠.
지인에게서 들은 또 다른 예를 보자면
매 학기마다 갖는 교사와 부모의 컨퍼런스를 마친 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이
"엄마 엄마 내가 보여줄 게 있어!"라며 아주 밝고 자신 있게 어디론가 끌고 가더랍니다.
그리고 보여준 건 운동장 한 귀퉁이의 자기 키만한 너비의 큰 구덩이
"엄마 내가 쉬는 시간마다 이만큼 판거야!"
쉬는 시간마다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혼자서 판 구덩이가 자신은 자랑스러웠겠지만
부모의 마음은 다들 같으시리라...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영어에 적응을 하게 되면 서서히 자녀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본인의 비즈니스 특성상 이민 1.5세 혹은 2세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 데
보통은 한국어로 먼저 소통을 시도하다 영어로 바꾸어 소통하게 되지만
어느 날 한국어로 시작한 상담에서 난항을 겪게 되자
10대 후반인 자녀의 아빠가 통역에 나서는데
똑같은 한국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데 소통이 되지 않는가?
부모외에는 한국어를 듣고 말할 일이 없었던지라
다른 사람이 말하는 한국어의 발음이 낯설어서 알아듣기 힘들었나 보다.
유학이든 이민이든 본인이 나고 자라온 국가를 떠나 새로운 나라로 이주하여
빠른 기한 내에 적응하는 길 혹은 성공하는 길은
그곳의 언어와 문화를 최대한 빨리 받아들이는 길만이 성공의 지름길임은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바이리라.
언어 습득 능력이 빠른 애들에게도 새로운 환경에서 생소한 언어를 습득하는 길은
확실히 험난한 길임에 틀림없어 보이지만 그들의 언어와 정체성을 지켜주는 것도
자녀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끌고 온 이민 1세대들의 책임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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